AKS Home | CEFIA Home |  영문홈페이지

전문가 칼럼

브라질에서의 한국학, 그 역사를 짚어보다

임윤정
상파울루대학교 동양어학부 한국어문학과, 교수
2023년은 한국인 102명이 2개월의 항해 끝에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 산토스 항구에 발을 디딘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1갑자가 한 바퀴를 돌아 환갑을 맞이하기까지 브라질 한인 커뮤니티는 5만 명으로 늘어났고, 상상력이 미치지 못할 우여곡절과 변천을 체험해 왔다. 1970년대만 해도 "미래의 나라"라고 불린 브라질은 1980년~1990년대를 통해 "잃어버린 20년"의 힘겨운 세월을 감내하는 동안 한국은 "한강의 기적"의 열매를 거두며 국제적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지난 6월, 상파울루대학교에서는 브라질 한인 이민 60주년을 주제로 "제10회 상파울루대학교 한국학대회"가 개최되었다. 80여 명의 대면 참가자, 160여 명의 비대면 참가자들이 함께한 이번 행사에는 10여명의 국내외 연구자들이 이틀에 걸쳐 브라질 및 남미 한인 이민사, 그리고 한인 해외동포 현황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유하였고, 한인 이민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이민 일기"(Nick Farewell 감독) 상영 및 공개토론 등의 순서가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으로 상파울루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국제연례행사로 자리 잡아 제10회에 이른 "상파울루대학교 한국학대회"는 학과 설립 10주년을 맞아 여러모로 뜻깊은 기념의 자리가 되었다.
제10회 상파울루대학교 한국학대회

2013년 상파울루대학교에서 한국어문학과가 첫발을 디딜 시, 브라질에서의 한국학이란 매우 산발적으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연구자들의 손을 통해 시도되고 있었다. 역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으로 2003년부터 격년제로 실시되어 오는 "EECAL-중남미 한국학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경제, 경영, 국제관계 등에서 어느 정도의 연구 성과가 관찰되었으나 지속성도 확장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사그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브라질에서의 한국학 역사

최초의 브라질 한국학 시도로 꼽을 수 있는 활동은 한국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는 브라질 수도의 브라질리아연방대학교(UnB)내 아시아학 연구회(NEASIA)를 리톤 기마랑이스(Lytton Guimarães,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NEASIA는 1981년 동대학교에 개설된 일본어문학과를 중심으로 하여1987년 CEAM(다학제간고등연구센터)내 결성된 연구회였으나 한국에 개인적인 관심이 컸던 리톤 교수가 2003년도에 제5회 연구회장을 역임하게 되며 한국학 연구논문도 발표하고 또 2007년도에 동 대학교에서 "제1회 한국학 학술포럼"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합심하여 협력할 만한 모든 면에서의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하였고, 리톤 교수의 은퇴와 함께 브라질리아연방대학교의 한국학은 휴면상태에 들어갔다.

리톤 교수가 NEASIA 회장을 역임하던 2003년도에는 그와 친분이 있던 엔히케 알테마니(Henrique Altemani, 국제관계학) 상파울루캐톨릭대학교(PUC-SP) 교수가 동 대학교 내 아태 연구회(GEAP)를 결성하고 상파울루대학교(USP)의 지우마르 마지에로(Gilmar Masiero, 경영학과) 교수가 합세하였다. 그리하여 상파울루캐톨릭대학교에서는 2007년 "제3회 EECAL-중남미 한국학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 역시 이렇다 할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채 사실상 폐지되었다. 지우마르 마시에로 교수는 그 불씨를 살리고자 2010년 상파울루대학교 상경대에 아시아학 연구프로그램(PROASIA)을 개설하였고 2017년도에는 "제8회 EECAL-중남미 한국학 학술대회"를 유치하였지만, 그 역시 연구 작업을 이어가거나 한국학을 확장시킬 만한 젊은 피를 모으는 데 실패하고 2019년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말았다.

새로운 출발

사실, 외국에서의 한국학은 국가별로 한류 확산을 기점으로 하여 확연히 달라지는 현상을 보였고 브라질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의 한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2년 전까지의 한국학 연구가 국제관계·경제·경영학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 것 또한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3년도에 브라질리아연방대학교와 상파울루캐톨릭대학교에서 나란히 한국학 시도가 있었던 것은 2002년 말 룰라 대통령이 당선되며 최초로 노동자당이 집권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꿈에 부풀어 있었던 노동자당은 한국을 브라질의 경제발전 본보기로 삼았고 한국의 눈부신 발전이 훌륭한 교육제도에 기인한다는 명제를 표방하여 한국에 대한 관심이 반짝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이지만 상파울루대학교에 PROASIA를 결성하고 근 10년에 걸쳐 한국·일본·중국을 연구하려는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을 유치하는 데 실패한 지우마르 마지에로 교수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딱히 관심을 끌 만한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브라질의 최고 대학교라 자타가 공인하는 상파울루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최근 10여 년째 브라질 최대교역국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그 어떤 학술적 관심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파울루대학교 상경대 내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형성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학문이 한 대학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려면 학과라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할 텐데 브라질 대학, 특히 공립대학의 학술적 문화에서는 지역학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2005년2월16일자 VEJA주간지 표지
결국, 브라질 국립대학 환경에서 한국학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은 어문학대학이었고, 상파울루대학교 인문대학에 2009년 한국어문학과 설립프로젝트가 발의되었고 미로와도 같은 대학 행정 수속 절차를 밟아 3년 끝에 최종 승인을 받은 것은 2012년 6월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강타한다. 그때는 몰랐으나 2012년도는 브라질에서 한류가 본격화된 시점으로 인정되었으니 2012년 6월에 최종 승인을 받아 2013년도에 한국어문학과 1기생을 모집하게 된 것은 너무도 절묘한 타이밍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정원 15명에 13명 지원생, 약간의 미달로 시작한 한국어문학과는 10주년을 맞아 올해에는 커트라인이 영문과를 능가하는 기이한 현상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한국어문학과에는 현재 90명이 재학 중이며, 그간 배출된 졸업생들은 기업, 한글 교육, 문학번역 등의 분야로 서서히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한국어(한국어교육) 그리고 한국문학(문학번역)으로 한국어 & 문학이라는 본연의 분야로 자연스레 특화되고 있다.
상파울루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요약하자면, 브라질에서의 한국학은 상파울루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개설 전과 후로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고, 두 시기를 가르는 한류라는 강력한 요소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경영·국제관계를 축으로 했던 제1기의 브라질 한국학이 "학술적인 관심"에 의한 것이었다면 제2기의 그것은 한류에 매료되어 "감정적인 열정"을 품고 출발한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역시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 아니라 감성의 동물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17세기 네델란드 물리학자 하위헌스(Huygen)가 밝혀낸 빛의 전파 원리에 따르면 빛의 파동이 전파될 때 파면 위의 모든 점 하나하나가 각각 2차적인 파면을 형성하는 새로운 빛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빛을 받은 입자는 각각 새로운 빛의 원천이 된다는 말, 고등학교 다닐 때 물리 수업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이 원리가 새삼스레 생각난다. 이제 상파울루대학교 한국어문학과의 학생들은 열정과 설렘을 안고 제2기의 브라질 한국학을 전파하는 시작점에 서 있다.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