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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포커스

한국 신화 개관 - 3

한국의 대표적 신화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1. <창세가>
<창세가>는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도에서 전해지는 창세신화의 한 종류이다. 한국인들이 상상한, 세계가 만들어질 때의 모습과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초에는 하늘과 땅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었다. 어느 날 하늘과 땅이 분리되면서 미륵(彌勒)이라는 신이 탄생하였다. 미륵은 하늘과 땅이 붙지 않도록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워 받치게 하였다. 이어 미륵은 하늘의 해와 달이 두 개씩 생겨나자 하나씩 떼어내 다른 별들을 만들었다. 미륵은 물과 불의 근원이 궁금하여 그것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메뚜기를 잡아 물과 불의 근원을 물었으나 답을 얻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개구리를 잡아 물었으나 역시 답을 얻지 못하였다. 이번에는 쥐를 잡아 묻자, 쥐가 답을 알려주면 보상으로 무엇을 주겠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미륵이 인간세계의 쌀독을 차지하게 해주겠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쥐가 지상의 모든 물의 발원지를 알려주고, 불꽃이 처음 발생하는 불의 진원지를 알려주었다. 만족스러운 답을 얻은 미륵은 쥐에게 보상을 해주었다. 그래서 쥐들은 인간의 쌀을 몰래 훔쳐 먹게 되었다고 한다.
미륵은 금쟁반과 은쟁반을 마련하고 하늘을 향해 주문을 외자, 하늘에서 애벌레가 한 마리씩 쟁반에 떨어졌다. 이 애벌레들은 각각 남녀 한 쌍이 되었다. 미륵은 인간 남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옷 만드는 법, 음식 먹는 법 등을 가르쳤다.
하루는 석가(釋迦)가 나타나 미륵에게 자신이 인간세계를 차지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래서 미륵과 석가가 인간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합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줄다리기, 강물 얼리기, 꽃 피우기 등의 세 가지 내기를 하였는데 처음 두 가지는 모두 미륵이 승리하였다. 마지막 세 번째 내기를 위해 미륵은 잠이 들었고, 잠자는 사이에 미륵의 몸에서 꽃이 피어났다. 그러자 자는 척하던 석가가 미륵의 꽃을 꺾어 자신의 몸에 심고는 자신이 내기에서 승리하였다고 우겼다. 미륵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지만 석가의 행동에 질려 인간세계를 포기하였다. 미륵은 석가가 다스리는 인간세계가 타락할 것이라며 저주를 내리고 사라졌다.
인간세계를 차지한 석가는 지상에서 인간 무리 수천 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음식 먹는 법을 가르쳤다. 미륵과 그 무리는 생식(生食)을 했는데, 석가와 그 무리는 화식(火食)을 했다. 석가의 무리 중에 화식을 거부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이 죽어 소나무와 바위가 되었다.

이 신화는 한국인이 생각한 세계 질서, 인간의 탄생과 문화 변동 등 다양한 신화적 의미가 들어있다. 우선 미륵과 석가라는 두 신이 등장하여 관심을 끈다. 이야기 전반부는 미륵의 출현과 더불어 카오스였던 세계가 코스모스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준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조정, 물과 불의 근원 찾기 등이 처음 세계가 열리면서 갖추어야 할 질서임을 알려준다. 세계의 질서가 잡힌 다음 미륵은 인간을 탄생시킨다. 이야기 중반부는 석가가 나타나 인간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미륵과 경합하는 과정이 나온다. 미륵은 모든 능력에서 석가를 앞서지만 석가의 속임수와 집요함에 인간세계를 넘기고 저주를 퍼붓고 사라진다. 이야기 후반부는 석가가 다스리는 세계의 질서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다수의 인간 탄생과 음식문화에 대한 것이 골자이다.

미륵이 다스리는 세상에 석가가 등장함으로써 지상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됨을 보여주고 있다. 미륵이 초기 문화형을 의미한다면 석가는 후기 문화형을 의미한다. 미륵이 인간 남녀 1명씩 한 쌍만 탄생시킨 것과 대조되게 석가의 세계에서는 인간 무리 수천 명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최초의 인간은 천상을 기반으로 등장한 반면, 이후의 인간은 지상에서 다수가 출현한다. 최초의 인간은 지상의 일반적 질서가 적용될 수 없음을, 이후의 인간은 지상에서 번식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 신화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인간의 문화도 변화를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 문화로, 생식에서 화식으로의 변화가 나타난다. 화식은 육식을 의미하며, 또한 나뭇가지와 같은 자연의 원자료를 태워 소진시켜 발생한 에너지로 조리하는 것이다. 화식은 결국 자연물을 훨씬 더 많이 소진시켜 버리는 음식 섭취 방식인 것이다. 자연의 속성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인간과 대비해서 영원함을 뜻한다면, 화식을 거부한 두 사람이 바위와 소나무가 된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바위와 소나무는 변치 않는 것, 영원한 것, 오래 남는 것의 대명사이다.

이 신화에서는 다른 신화에서 찾기 어려운 악신(惡神)이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미륵은 천지 창조의 주역이며, 세상의 질서를 부여한 존재이다. 석가와의 내기에서 나타나듯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다. 반면 석가는 미륵이 만들고 질서를 부여한 세계를 빼앗고자 하는 인물이며, 경쟁에서도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다. 지상의 세계를 포기한 미륵이 석가가 만들고 통치하는 세상은 타락할 것이라고 저주를 내리는데, 실제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정확한 예언이라 할 수 있다. 이 예언은 미륵이 만든 인간세계가 신성하고 고귀한 것이라면, 석가가 통치하는 세계는 타락하고 비루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오기를 바라는 열망을 미륵이 출현해 주기 바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전통이 있다. 이러한 미륵사상이 이 신화에도 반영되어있는 것이다. 이 신화에서는 인간의 세계가 비루하고 타락한 원인은 인간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 그 인간세계를 만들고 통치한 신들의 문제라고 인식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2. <목도령과 대홍수>
<목도령과 대홍수>는 민간에서 구술 전승되던 설화이지만 신화의 성격을 잘 유지하고 있다. <창세가>처럼 처음 세상이 만들어질 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간의 기원에 대한 후대의 신화적 사고를 읽을 수 있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천상선녀가 땅으로 내려와 나무(木神)의 정기에 감응하여 아들을 낳았다. 나무에게서 얻었다 하여 '목도령'이라 불렀다. 어느 날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고, 곧이어 큰 비가 내려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아버지인 나무가 목도령을 싣고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물에 휩쓸린 개미떼와 모기떼를 만나자 목도령이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구해주었다. 조금 더 가자 한 소년이 살려 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목도령이 구해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나무가 반대하였다. 하지만 목도령은 소년을 불쌍히 여겨 결국 구해주었다. 이윽고 목도령과 개미, 모기, 소년을 태운 나무가 물이 없는 높은 산의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한 노파가 친딸과 수양딸을 데리고 있었다. 목도령과 소년은 모두 친딸과 결혼하기를 바랐다. 소년은 자신이 친딸과 결혼하기 위해 목도령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노파에게 목도령이 신이함이 있으니까 테스트를 해보라고 말한다. 목도령이 테스트에 실패하면 노파가 목도령을 불신하게 될 것이고 그때 자신이 친딸을 차지할 계획이었다. 목도령은 모래밭에서 곡식을 가려내는 시험을 보게 되었다. 목도령이 어쩔 줄 몰라 하자 물에서 건져 준 개미떼가 나타나 해결해 주었다. 다음에는 노파가 딸들을 방에 넣고 어느 방에 누가 있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원하는 배우자를 찾는 과제를 냈다. 이번에는 물에서 구해준 모기떼가 나타나 친딸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결국 목도령은 친딸과 결혼하고, 소년은 수양딸과 결혼하였다.
대홍수로 인류가 사라졌는데, 이 두 쌍이 인류의 새로운 시조가 되었다. 선한 인간은 목도령의 후예이고 악한 인간은 소년의 후예이다.

이 신화는 홍수로 세계가 멸망하고 주인공 목도령이 홍수 이후의 새로운 인간세계에 시조가 된다는 점에서 홍수신화 혹은 인류기원신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이야기로 대표적인 것이 『성서』의 <노아의 방주>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이 유형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이 신화에서 주목할 점은 우선 왜 홍수가 발발하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야기에서는 홍수 발발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홍수 발발의 시점이 천상선녀가 지상의 남편과 아들을 두고 떠난 직후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의 신화나 설화에서는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와 자식이 위급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아주 이례적으로 어머니가 떠나고 홍수가 난 위급한 세상에 아버지와 아들이 남겨진다. 부부의 이별은 모권(母權)와 부권(父權)의 갈등을 나타내며,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남겨진다는 것과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에서 따왔다는 것은 가족제도가 부계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변화된 세계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가 출현하는 것으로 응축되며, 결국 목도령이 어떤 인물인가 하는 문제가 신화의 핵심이 된다. 목도령의 성격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상이나 당시 재편되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요청되는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일단 목도령은 보통 인간들과 달리 천상선녀와 나무(목신) 사이에 태어난 신성한 존재이다. 한국의 서사 전통에서 위대한 영웅은 하늘과 땅의 결합을 통해 탄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른바 '천(天)-지(地)-인(人)'의 결합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만큼 새로운 시조로서 목도령의 정체성을 신성한 부모의 혈통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목도령의 성품이나 능력면에서 그의 성격을 살필 수 있다. 그는 물에 빠진 존재들을 구원하는 선한 성품을 가졌다. 그리고 개미나 모기와 같은 자연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러한 능력은 이야기 속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기능한다. 이는 새로운 인간세계에 절실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신화에서 목도령과 대척점에 놓이는 소년도 중요한 신화적 의미를 가진다. 소년은 세속의 가치와 악한 심성을 표현하고 있다. 타인을 속이고, 자신을 구해준 자를 음해하는,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인물로 묘사된다. 결국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지만, 그 역시 목도령과 더불어 인류의 새로운 조상 중 한 명이 된다. 이후 인류는 목도령의 유전자와 소년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이 신화는 목도령과 소년을 통해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 속성인 선과 악, 신성과 세속의 출처를 말하고 있다.

Infokorea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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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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