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포커스
한국의 전통놀이 - 3
세시풍속과 전통놀이
세시풍속과 관련된 놀이들은 그 시기에 따라 기풍(祈豐)·성장·수확의례의 놀이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월과 2월의 놀이들이 기풍의 놀이라면, 여름철에 하는 놀이는 성장의례와 관련된 놀이이며 가을에 하는 놀이는 수확의례와 관련된 놀이이다. 그리고 구체적 목적에 따라 풍농을 기원하는 예측 형식의 놀이와 흉농을 미리 점쳐보는 점풍 형식의 놀이가 있다.
윷놀이는 29개의 점으로 구성된 윷판 위에서 네 개의 윷가락을 던지며 각각 네 개의 말을 이동시키고 네 개의 말이 말판을 모두 빠져나왔을 때 승부가 나는 놀이이다. 윷가락을 던져서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모양을 따져 사위(또는 끝수)를 정하는데, 사위에 따라 말이 이동할 수 있다. 윷가락 세 개가 엎어지고 한 개가 뒤집어지면 '도'라 하며 한 밭을 움직일 수 있다. 윷가락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뒤집어지면 '개'라 하며 두 밭을 움직일 수 있다. 윷가락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뒤집어지면 '걸'이라 하며 세 밭을 갈 수 있다. 모두 뒤집어지면 '윷'이라 하며 네 밭을 갈 수 있고, 네 개 모두가 엎어지면 '모'라 하며 다섯 밭을 갈 수 있다. 윷이나 모가 나오면 '사리'라 하여 다시 한 번 던질 수 있다. 윷말은 함께 갈수도 있고 따로 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네 개의 윷말이 먼저 윷판을 빠져 나오는 사람이 승리한다.
윷놀이는 놀이적인 측면과 함께 점복 기능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 놀이이다. 점복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놀이의 결과를 통해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편윷과 개인의 운수를 점치는 윷점이 있다. 편윷은 주로 마을 단위로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고 놀이의 결과에 따라 마을의 안녕과 풍농(豐農)이 결정된다는 방식이다.
쌍륙의 기원이나 유래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려우나, 문헌을 통해 오래전부터 한국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무제(漢武帝) 때,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이 놀이는 한국에 들어와 백제에서 유행하였으며, 다시 일본에 전해져서 '스고로쿠'가 되었다고 한다. 스고로쿠는 주사위를 던져 지도나 그림이 그려진 판 위에 말을 진행시키는 놀이로 윷놀이와 비슷하다.
쌍륙이 기록된 우리나라 문헌은 대부분 고려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고려시대 쌍륙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에는 "한호옥국쟁쌍륙(閒呼玉局爭雙六: 한가로이 쌍륙판을 지켜보며 쌍륙을 겨룬다)"이라는 시구(詩句)가 전해지고 있어 쌍륙이 고려시대에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조선 후기의 풍속화에는 실제 놀이 장면이 남아 있는데, 평범한 차림새의 여인과 선비가 쌍륙을 두고 있는 모습이 그림에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쌍륙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좀 더 다양한 계층과 민간으로까지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 윳놀이
윳놀이는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가락을 던져 승부를 겨루는 전통놀이이다. 『열양세시기』에는 '보름을 넘겨 윷놀이를 하면 벼가 죽는다'라는 속담을 소개하면서 '보름이 지나면 윷을 거두어 감추는데, 이 날 이후로 계속하면 농사에 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로 보아 전통적인 윷놀이는 신년의례와 결부된 민속놀이로서 행해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윷놀이는 29개의 점으로 구성된 윷판 위에서 네 개의 윷가락을 던지며 각각 네 개의 말을 이동시키고 네 개의 말이 말판을 모두 빠져나왔을 때 승부가 나는 놀이이다. 윷가락을 던져서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모양을 따져 사위(또는 끝수)를 정하는데, 사위에 따라 말이 이동할 수 있다. 윷가락 세 개가 엎어지고 한 개가 뒤집어지면 '도'라 하며 한 밭을 움직일 수 있다. 윷가락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뒤집어지면 '개'라 하며 두 밭을 움직일 수 있다. 윷가락 한 개가 엎어지고 세 개가 뒤집어지면 '걸'이라 하며 세 밭을 갈 수 있다. 모두 뒤집어지면 '윷'이라 하며 네 밭을 갈 수 있고, 네 개 모두가 엎어지면 '모'라 하며 다섯 밭을 갈 수 있다. 윷이나 모가 나오면 '사리'라 하여 다시 한 번 던질 수 있다. 윷말은 함께 갈수도 있고 따로 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네 개의 윷말이 먼저 윷판을 빠져 나오는 사람이 승리한다.
윷놀이는 놀이적인 측면과 함께 점복 기능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 놀이이다. 점복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놀이의 결과를 통해 한 해의 풍흉을 점치는 편윷과 개인의 운수를 점치는 윷점이 있다. 편윷은 주로 마을 단위로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고 놀이의 결과에 따라 마을의 안녕과 풍농(豐農)이 결정된다는 방식이다.
2. 쌍륙(雙六·雙陸)
쌍륙은 두 사람 또는 두 편이 열 다섯 개씩의 말을 가지고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 사위대로 판 위에 말을 써서 먼저 나가면 이기는 놀이로 실내 오락의 하나이다. 길게 깎아 다듬은 나무(말)를 쥐고 논다고 하여 '악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놀이는 연중 어느 때나 할 수 있지만 대체로 정초에 많이 놀았으며 한가위나 겨울철의 한가한 시간에 즐기기도 하였다.쌍륙의 기원이나 유래를 정확히 밝히기는 어려우나, 문헌을 통해 오래전부터 한국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무제(漢武帝) 때,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이 놀이는 한국에 들어와 백제에서 유행하였으며, 다시 일본에 전해져서 '스고로쿠'가 되었다고 한다. 스고로쿠는 주사위를 던져 지도나 그림이 그려진 판 위에 말을 진행시키는 놀이로 윷놀이와 비슷하다.
쌍륙이 기록된 우리나라 문헌은 대부분 고려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고려시대 쌍륙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에는 "한호옥국쟁쌍륙(閒呼玉局爭雙六: 한가로이 쌍륙판을 지켜보며 쌍륙을 겨룬다)"이라는 시구(詩句)가 전해지고 있어 쌍륙이 고려시대에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조선 후기의 풍속화에는 실제 놀이 장면이 남아 있는데, 평범한 차림새의 여인과 선비가 쌍륙을 두고 있는 모습이 그림에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쌍륙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좀 더 다양한 계층과 민간으로까지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륙의 놀이 도구로는 쌍륙판(雙六板)과 서른 개의 말(馬) 그리고 두 개의 주사위(骰子)가 필요하다. 쌍륙판은 정해진 크기는 없지만 대략 가로 80㎝, 세로는 약 40㎝ 내외의 크기로 만들어졌으며 가장자리에 턱을 높이 세운 것과 턱이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말판 안에는 검은 선으로 24칸의 밭(田)을 그려 넣는데 가운데 두 개의 큰 칸은 놀이에 사용되는 밭이 아니고 쫓겨난 말들이 쉬는 곳이다. 밭은 안육(內陸)과 바깥육(外陸)으로 구별된다.
전형적인 쌍륙용 주사위는 투자(骰子)라고도 하며 상아나 기타 여러 동물의 뼈로 만들어졌다. 각 변의 길이가 1㎝쯤 되게 정육면체로 깎고, 6면에는 점으로 1에서 6까지를 새겨서 표시하였다. 특히 호랑이 뼈로 만든 주사위는 놀 때 원하는 숫자가 그대로 나온다는 믿음이 있어서 대체로 선호되었다. 말은 7㎝ 정도 높이의 기둥으로, 아래는 둥글게 하고 위는 뾰족하게 함으로써 손으로 쥐고 옮기기 편하게 만든다. 말의 형태는 원형 받침에 기다란 추가 달린 모양인데 중간 부위에 선을 그어 아래와 위의 색깔을 다르게 칠하였다. 말의 색깔 배합을 달리하여 상대편의 말과 자신의 말을 구별하였는데 주로 흑백(黑白)이나 청홍(靑紅)을 대비시켜 사용하였다. 그러나 간편하게 바둑돌을 이용하기도 한다. 말은 각자 15개씩이 필요한데, 지방에 따라 16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놀이는 대체로 쌍륙판에 흑편의 말과 백편의 말을 형식에 따라 벌여 놓고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나온 수만큼 말을 전진시켰다. 먼저 두 사람이 쌍륙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자기 말의 색깔을 정하여 흰말과 검은말을 각각 15개씩 배치한다. 흰말은 자기 앞오른쪽(안육)의 '6'자가 쓰진 칸(밭) 안에 여섯 개, 왼쪽(바깥육)의 '5'자 칸 안에 세 개를 세워 놓고, 또 상대편 안육의 '1'자 칸에 두 개, 바깥육의 '1'자 칸에 다섯개를 세워 놓는다. 반대로 검은말도 흰말을 세운 것과 같이 자기 자리와 상대의 자리 안육과 바깥육에 15개의 말을 모두 배치한다.
쌍륙을 놀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할 것인지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보통 각자 주사위를 한 개씩 던져 높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먼저 한다. 말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끗수에 따라 전진시켜야 한다. 만약 두 주사위 숫자가 6과 3이 나왔다면 하나의 말로 여섯 밭을 간 후 계속해서 세 밭을 더 움직여 총 아홉 밭을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 개의 말로 한 개는 여섯, 다른 한 개는 세 밭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6과 3의 합이 아홉 밭이라 해서 임의로 다섯 밭, 네 밭 등으로 말을 쪼개서 쓸 수는 없다. 이때 숫자에 맞춰 말을 전진하는 도중 놓을 자리(밭)에 상대의 말이 한 개 있는 경우(바리, 혼자 있는 말)에는 그 말을 잡아내고 자신의 말을 놓을 수 있다. 잡힌 말은 반드시 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말을 놓을 자리에 상대의 말이 두 동 이상 있을 때는 그 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한편 승부의 결정 방법은 자기 밭 안육에 열다섯 개의 말이 모두 모이거나, 모인 말을 판바깥으로 전부 내보내면 이기게 된다. 이때 자기 밭에 모두 옮겨 놓은 말을 판 밖으로 내보내면 한동 났다고 하는데, 보통 세 번 겨루어서 두 동 이상이 나면 최종 승리하게 된다.
쌍륙은 외국에서 전래되었지만 천 년 넘게 한국인들이 즐겨왔던 놀이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문헌과 풍속화에 등장하고 있어 민간에 널리 알려졌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춤이 진행되는 막간에는 농촌이나 어촌의 생활을 표현한 놀이가 진행된다. 이들 놀이 가운데는 남생이 놀이, 고사리 따기, 청어 엮기, 기와 밟기, 덕석몰이, 쥔쥐새끼놀이, 문지기놀이, 가마등, 수건돌리기 등이 있다.
강강술래의 원형은 『삼국지』 위지동이전 마한조에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떼 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인이 같이 일어나서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는 마치 중국의 탁무와 같았다'라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강강술래는 구연 상황에 따라 일정한 사설 외에도 일시적인 사설을 사용하면서 메기고 받는 소리를 갖는 선후창의 구연 방식을 지니고 놀이의 흥취와 구연자의 분위기에 따라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조정되는 가창민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강강술래는 놀이를 놀면서 누구나 앞소리를 메길 수 있으므로 서로 돌려가면서 노래하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연하기도 한다. 강강술래의 후렴은 다른 유희민요의 후렴보다 더 짧으며, 누구나 익숙하고 쉽게 익힐 수 있고, 연행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노래 부르는 이들을 일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강강술래는 짧은 후렴을 가지고 있어 사설의 내용이 후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앞소리의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므로 자연 서사적인 내용의 민요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앞소리가 끝날 때마다 후렴이 배치되어 있어서 메기는 소리의 음의 불규칙성을 정연하게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노래가 공동체의 표현 방법의 하나인 이상 강강술래는 가창자인 여인들의 가장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여성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절망과 고통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삶 그 자체인 것으로 소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끝임 없이 주어지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노래를 통해 자연의 미적 형상화를 승화시키면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때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주어진 삶의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강술래의 사설은 공식적 표현과 내용적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식적인 표현은 놀이하는 부녀자들의 주변적인 심정과 놀이 분위기, 희망에 가득한 정서와 염원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용적 표현으로는 연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들이 많은데, 주로 남녀간의 화답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 내용의 노래와 임의 존재가 있고 없음에 따른 즐거움・외로움・그리움・절망감 등을 담고 있어 우리 민요가 갖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강강술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내용의 사설을 통해 주변 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주로 어려운 생활에서 오는 고통과 시집살이의 고달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 사설에는 여인들의 숙명론적인 체념 의식이 한 성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강강술래 사설에는 꽃과 달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은데, 강강술래에 드러난 꽃은 인간과 동화공존하면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또는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자연의 순환원리와 대비하면서 꽃을 님에 대한 그리움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으로 객관화하여 미적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강강술래에 드러난 달은 임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그리움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임의 부재에 대한 시적 감흥을 표면적인 의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강강술래는 여성들에 의한 최고의 집단놀이이자 유희민요로, 아름다움과 율동감을 춤이라는 형태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부수되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더불어 노래를 통하여 개인의 감정을 발산하고 순화시킨다. 이렇듯 춤, 노래, 놀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빠져도 강강술래가 갖는 신명은 살아나지 않는다.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 부르는 사람에 의한 선창과 후창, 그리고 익살스러운 놀이꾼에 의한 놀이 진행이 한데 어우러져, 춤・노래・놀이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종합예술적인 구비전승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강술래는 고대에는풍요 기원이라는 의례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신성 지향(神聖指向)의 놀이이자 노래였으나, 전승집단의 성향에 의해 차츰 오락적인 성향이 강화되면서 세속 지향의 놀이이자 노래로 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쌍륙용 주사위는 투자(骰子)라고도 하며 상아나 기타 여러 동물의 뼈로 만들어졌다. 각 변의 길이가 1㎝쯤 되게 정육면체로 깎고, 6면에는 점으로 1에서 6까지를 새겨서 표시하였다. 특히 호랑이 뼈로 만든 주사위는 놀 때 원하는 숫자가 그대로 나온다는 믿음이 있어서 대체로 선호되었다. 말은 7㎝ 정도 높이의 기둥으로, 아래는 둥글게 하고 위는 뾰족하게 함으로써 손으로 쥐고 옮기기 편하게 만든다. 말의 형태는 원형 받침에 기다란 추가 달린 모양인데 중간 부위에 선을 그어 아래와 위의 색깔을 다르게 칠하였다. 말의 색깔 배합을 달리하여 상대편의 말과 자신의 말을 구별하였는데 주로 흑백(黑白)이나 청홍(靑紅)을 대비시켜 사용하였다. 그러나 간편하게 바둑돌을 이용하기도 한다. 말은 각자 15개씩이 필요한데, 지방에 따라 16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놀이는 대체로 쌍륙판에 흑편의 말과 백편의 말을 형식에 따라 벌여 놓고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나온 수만큼 말을 전진시켰다. 먼저 두 사람이 쌍륙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자기 말의 색깔을 정하여 흰말과 검은말을 각각 15개씩 배치한다. 흰말은 자기 앞오른쪽(안육)의 '6'자가 쓰진 칸(밭) 안에 여섯 개, 왼쪽(바깥육)의 '5'자 칸 안에 세 개를 세워 놓고, 또 상대편 안육의 '1'자 칸에 두 개, 바깥육의 '1'자 칸에 다섯개를 세워 놓는다. 반대로 검은말도 흰말을 세운 것과 같이 자기 자리와 상대의 자리 안육과 바깥육에 15개의 말을 모두 배치한다.
쌍륙을 놀기 위해서는 누가 먼저 할 것인지 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보통 각자 주사위를 한 개씩 던져 높은 숫자가 나온 사람이 먼저 한다. 말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끗수에 따라 전진시켜야 한다. 만약 두 주사위 숫자가 6과 3이 나왔다면 하나의 말로 여섯 밭을 간 후 계속해서 세 밭을 더 움직여 총 아홉 밭을 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두 개의 말로 한 개는 여섯, 다른 한 개는 세 밭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6과 3의 합이 아홉 밭이라 해서 임의로 다섯 밭, 네 밭 등으로 말을 쪼개서 쓸 수는 없다. 이때 숫자에 맞춰 말을 전진하는 도중 놓을 자리(밭)에 상대의 말이 한 개 있는 경우(바리, 혼자 있는 말)에는 그 말을 잡아내고 자신의 말을 놓을 수 있다. 잡힌 말은 반드시 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말을 놓을 자리에 상대의 말이 두 동 이상 있을 때는 그 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한편 승부의 결정 방법은 자기 밭 안육에 열다섯 개의 말이 모두 모이거나, 모인 말을 판바깥으로 전부 내보내면 이기게 된다. 이때 자기 밭에 모두 옮겨 놓은 말을 판 밖으로 내보내면 한동 났다고 하는데, 보통 세 번 겨루어서 두 동 이상이 나면 최종 승리하게 된다.
쌍륙은 외국에서 전래되었지만 천 년 넘게 한국인들이 즐겨왔던 놀이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문헌과 풍속화에 등장하고 있어 민간에 널리 알려졌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3.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마을 아낙들 여럿이 어울려 손을 잡고 활달한 원무를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즐기는 놀이이다. 주로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며 음력 8월 한가위에 연행된다.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수십 명의 마을 아낙들이 모여서 손을 맞잡아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돌며, 한 사람이 '강강술래'의 앞부분을 선창하면 뒷소리를 하는 여러 사람이 이어 받아 노래를 부른다. 이러한 놀이는 밤새도록 춤을 추며 계속된다.춤이 진행되는 막간에는 농촌이나 어촌의 생활을 표현한 놀이가 진행된다. 이들 놀이 가운데는 남생이 놀이, 고사리 따기, 청어 엮기, 기와 밟기, 덕석몰이, 쥔쥐새끼놀이, 문지기놀이, 가마등, 수건돌리기 등이 있다.
강강술래의 원형은 『삼국지』 위지동이전 마한조에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떼 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인이 같이 일어나서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는 마치 중국의 탁무와 같았다'라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강강술래는 구연 상황에 따라 일정한 사설 외에도 일시적인 사설을 사용하면서 메기고 받는 소리를 갖는 선후창의 구연 방식을 지니고 놀이의 흥취와 구연자의 분위기에 따라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조정되는 가창민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강강술래는 놀이를 놀면서 누구나 앞소리를 메길 수 있으므로 서로 돌려가면서 노래하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연하기도 한다. 강강술래의 후렴은 다른 유희민요의 후렴보다 더 짧으며, 누구나 익숙하고 쉽게 익힐 수 있고, 연행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노래 부르는 이들을 일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강강술래는 짧은 후렴을 가지고 있어 사설의 내용이 후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앞소리의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므로 자연 서사적인 내용의 민요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앞소리가 끝날 때마다 후렴이 배치되어 있어서 메기는 소리의 음의 불규칙성을 정연하게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노래가 공동체의 표현 방법의 하나인 이상 강강술래는 가창자인 여인들의 가장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여성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절망과 고통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삶 그 자체인 것으로 소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끝임 없이 주어지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노래를 통해 자연의 미적 형상화를 승화시키면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때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주어진 삶의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강술래의 사설은 공식적 표현과 내용적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식적인 표현은 놀이하는 부녀자들의 주변적인 심정과 놀이 분위기, 희망에 가득한 정서와 염원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용적 표현으로는 연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들이 많은데, 주로 남녀간의 화답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 내용의 노래와 임의 존재가 있고 없음에 따른 즐거움・외로움・그리움・절망감 등을 담고 있어 우리 민요가 갖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강강술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내용의 사설을 통해 주변 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주로 어려운 생활에서 오는 고통과 시집살이의 고달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 사설에는 여인들의 숙명론적인 체념 의식이 한 성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강강술래 사설에는 꽃과 달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은데, 강강술래에 드러난 꽃은 인간과 동화공존하면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또는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자연의 순환원리와 대비하면서 꽃을 님에 대한 그리움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으로 객관화하여 미적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강강술래에 드러난 달은 임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그리움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임의 부재에 대한 시적 감흥을 표면적인 의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강강술래는 여성들에 의한 최고의 집단놀이이자 유희민요로, 아름다움과 율동감을 춤이라는 형태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부수되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더불어 노래를 통하여 개인의 감정을 발산하고 순화시킨다. 이렇듯 춤, 노래, 놀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빠져도 강강술래가 갖는 신명은 살아나지 않는다.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 부르는 사람에 의한 선창과 후창, 그리고 익살스러운 놀이꾼에 의한 놀이 진행이 한데 어우러져, 춤・노래・놀이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종합예술적인 구비전승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강술래는 고대에는풍요 기원이라는 의례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신성 지향(神聖指向)의 놀이이자 노래였으나, 전승집단의 성향에 의해 차츰 오락적인 성향이 강화되면서 세속 지향의 놀이이자 노래로 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Infokorea 2020
<인포코리아>(Infokorea)는 외국의 교과서 개발자와 교사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개발된 한국 소개 잡지입니다. 외국의 교과서 저자나 편집자들이 교과서 제작에 참고할 수 있고, 교사들이 수업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관련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또한, 한국의 문화, 사회, 역사, 경제 관련 주제를 특집으로 제공합니다. 2020년 호의 주제는 '한국의 전통놀이'입니다.
<인포코리아>(Infokorea)는 외국의 교과서 개발자와 교사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개발된 한국 소개 잡지입니다. 외국의 교과서 저자나 편집자들이 교과서 제작에 참고할 수 있고, 교사들이 수업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 관련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또한, 한국의 문화, 사회, 역사, 경제 관련 주제를 특집으로 제공합니다. 2020년 호의 주제는 '한국의 전통놀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