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아름드리

조지워싱턴대학교 및 워싱턴 D.C.의 한국학 현황

김연호 교수 사진
김연호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워싱턴과 한국학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정치의 심장부로서 전세계에서 각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활발한 토론을 벌이며 지식을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워싱턴에서의 한국학은 학문적 영역 뿐만 아니라 정책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워싱턴의 한국학 관련 기관들은 한국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해, 한국과 미국, 더 나아가 한국과 전세계를 잇는 가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워싱턴에는 브루킹스연구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국 외교협회(CFR), 헤리티지재단 등 세계적인 싱크탱크에서 한국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전문가 그룹이 포진해 있으며, 한국과의 활발한 교류 속에서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분야의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미국 조야의 정책서클에 영향을 미치며 스스로 정책서클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워싱턴 싱크탱크들이 정책현안 분석과 정책대안 제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이유이다.

정책현안을 넘어 한국어와 한국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철학· 종교 등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와 토론은 주로 대학의 몫이다. 차세대 한국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역할도 대학이 맡고 있다. 워싱턴 지역의 대학과 대학원 졸업생들은 상당수가 미 연방정부와 싱크탱크, 언론기관, 그리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로 진출한다. 이들이 한국관련 업무를 담당할 경우 한국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정책결정과정과 여론 형성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대외관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워싱턴의 한국학은 학술적인 차원 뿐만 아니라 공공외교 차원에서도 중요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지워싱턴대학과 한국학

워싱턴은 인구 70여만 명의 비교적 작은 도시이지만 미국의 수도답게 대학들이 밀집해 있다. 특히 조지워싱턴대, 조지타운대, 아메리칸대 등이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모두 갖추고 있고, 볼티모어에 본교를 둔 존스홉킨스대는 국제대학원(SAIS)을 워싱턴에 두고 있다. 이들 대학 모두 한국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있지만 한국학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대학은 조지워싱턴대와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두 곳뿐이며, 한국학 정교수들이 포진해 있는 대학은 조지워싱턴대가 유일하다.

사실 조지워싱턴대와 한국의 인연은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조지워싱턴대 의대의 전신인 컬럼비아 의대를 1892년에 졸업했고, 이어 이승만 박사가 1907년 조지워싱턴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인 유학생들이 꾸준히 늘면서 그동안 1천 명이 넘는 졸업생들을 배출했으며, 그 결과 한국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많은 조지워싱턴대 졸업생들이 사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조지워싱턴대는 1983년 미국 수도권 지역 최초로 한국어를 정식과목으로 채택할 정도로 한국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꾸준히 이뤄져왔다. 현재는 두 명의 교수와 박사급 시간강사가 초급부터 상급까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1995년에 출범한 ‘한무숙 콜로키엄(The Hahn Moo-Sook Colloquium)’은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매년 새로운 주제로 대규모 학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7회를 맞은 2019년 행사에서는 “K-Pop: 소프트파워, 자유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 문화 유용”을 주제로 미국 내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현재 조지워싱턴대는 워싱턴에서 유일하게 한국관련 인문사회과학을 학부와 대학원에서 교육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7명에 달하는 한국학 교수진(역사, 정치, 인문학 등 3개 기금교수직 포함)이 중심이 되어 역사, 정치, 경제, 경영, 예술, 인류학 등 폭넓은 학문분야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미 백악관과 국무부와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남북한과 동아시아 정치 및 안보 관련 강좌는 학생들 사이에서 언제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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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분야에서는 동아시아어문학과(East Asian Languages and Literatures Department)에서 1980년대초 한국어를, 1990년대말에는 한국문학을 정식과목으로 채택해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부전공으로 이수할 수 있게 됐으며, 2019년 가을학기에는 전공과목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04년 조지워싱턴대 국제경영교육연구센터(GW Center for International Business Education & Research) 자문위원회가 발족한데 이어, 2006년 미 교육부의 지원에 힘입어 김영기 교수와 박미옥 교수가 경영한국어 연구와 교재개발을 진행했고 “The Routledge Course in Business Korean” 출간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 프로그램의 최대 강점은 동아시아어문학과와 정치학과, 국제관계학부(Elliott School) 아시아 프로그램이 서로 연계돼 운영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처럼 탄탄한 학제간(interdisciplinary) 프로그램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 2016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해외한국학 중핵대학 육성사업)으로 설립된 한국학연구소(GW Institute for Korean Studies)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동안 조지워싱턴대에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지역과 대륙별 연구소는 있었지만,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소는 없었던 만큼, 한국학연구소 설립은 조지워싱턴대 내에서도 매우 이례적이고 야심찬 사업으로 평가되었다.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는 미국의 수도권뿐 아니라 미국 전역, 나아가 전세계 한국학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 아래, 각종 인문사회과학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하고 있다. 기존 한무숙 콜로키엄과 더불어 인문학 강의 시리즈, 시그내처 학술회의, 서재필 서클, 워싱턴 지역 학자들을 위한 한국학 워크샵 등이 그것이다. 또한 교과과정 프로그램으로 여름 단기 학부생 한국방문 프로그램, 조지워싱턴대-인디애나대 학부생 연구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한국학 전공생들의 교류 범위를 확대해 주고 있다. 한국학연구소 학부생 펠로우 연구프로그램은 전직 국무부 관리들의 멘토링 프로그램과 결합해 학생들의 진로 모색을 돕고 있다.

한국학연구소는 워싱턴 지역 및 교내 기관들과의 교류협력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조지워싱턴대 시거아시아연구센터(Sigur Center for Asian Studies)와 공동으로 미 교육부 Title VI 지원을 받은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년간 시거아시아연구센터가 독자적으로 계속 지원했지만 수상에는 실패하다, 한국학연구소 설립과 더불어 한국학 프로그램이 강화됨에 따라 경쟁력을 갖추게 되어 공동수상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핵심 사업은 지역사회 동아시아학 프로그램 개발이며, 구체적으로 워싱턴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에 (K-12) 동아시아 관련 커리큘럼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와 함께 학생들에게 한국어 펠로십도 지원된다.


맺는 말

최근 몇 년 동안 워싱턴 지역에서는 한국의 대미 공공외교 강화와 더불어 한국학이 크게 활성화됐다. K-Pop을 필두로 한 한류의 영향과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고조되면서 한국학에 대한 미국 학생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워싱턴 내 한국 전문가, 지한파가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고, 차세대 한국 전문가 육성 사업도 본격적으로 결실을 거두기까지 시간이 좀더 필요한 게 사실이다. 워싱턴의 한국학이 본궤도에 올라 가시적인 성과를 지속적으로 거둘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계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