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 저런 얘기

장서각 아카이브에서 만난 기관 이용자들

임지영 사진
임지영
장서각 자료보존관리팀 책임사서원

예전에 어떤 사서가 쓴 칼럼에서 “사서는 책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서로 일하는 동안 주로 이용자를 직접 상대하는 업무를 해왔던 필자로서는 매우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장서각에서 만나는 이용자들은 대학원생이나 연구자처럼 도서관에서도 흔히 뵐 수 있는 분들도 있지만, 박물관 학예사나 방송 작가처럼 일반도서관에서는 다소 뵙기 힘든 분들도 있다. 지면을 빌어 장서각에서 만났던 기관 이용자 군(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 본다.


1) 박물관 학예사
고문헌 이용 업무를 담당한 1년 남짓 동안 가장 많이 연락했던 분들이 아닌가 싶다. 장서각의 고문헌 이용 업무는 크게 대여, 열람 및 촬영지원, 이미지 제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박물관 학예사는 주로 전시를 위한 대여를 원하는데, 여기에 부수적으로 대여 예정 자료를 사전 열람한다거나 전시 패널, 도록 제작 등을 위해 이미지 제공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혹은 이미지를 제공받는 대신 직접 촬영을 하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고문헌 이용 업무의 전(全) 과정을 수행하게 하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고문헌 이용 담당자를 가장 귀찮게 하는 이용자 군(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연락을 받으면 “또 박물관이구나!”싶어서 귀찮다가도 전시를 앞두고 잦은 연락을 하다보면 왠지 친숙하게 느껴져서 실제로 얼굴을 뵙게 되면 무척 반가운, 고문헌 이용 담당자로 하여금 양가(兩價) 감정을 갖게 하는 분들이다.


2) 방송 작가·PD
고문서 촬영현장 사진 박물관 학예사가 이용을 원하는 자료에 대해 전문적으로 잘 아는, 매우 정제된 이용자인데 비하여, 방송 작가·PD는 단순히 방송 소재의 하나로 고문헌을 대하기 때문에 자료에 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방대한 분량의 거질(巨帙) 자료 안에서 특정 내용이 나오는 부분을 무려 20건 가까이 찾아달라고 요청해서 난감했던 적도 있고, 고문헌만 촬영하기로 했는데 촬영 당일 연출샷을 찍으려고 해서 실갱이를 벌인 적도 제법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혁신홍보팀에서 사전에 촬영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해 주셔서 마찰이 적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방송물을 촬영할 때 사전에 작가님들이 자료 조사를 보다 철저하게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동시에 이처럼 고문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이용자 군(群)을 돕기 위하여 사서인 내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고문헌 이용, 특히 이미지 이용과 관련해서, 가끔 사전 연락 없이 문자 그대로 공문만 “날아올”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서 보낸 것일 때가 많다. 가장 황당한 경우는 이렇게 날아온 공문을 보고 지자체 공무원에게 전화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사업을 대행하는 업체와 직접 이야기해보라.”고 할 때이다. 상설 전시관을 만들기 위해 복제본을 제작하겠다면서 단순 복사물·영인본·고품질 복제본의 차이를 전혀 모르기에 답답한 마음에 이런 수준이면 이미지를 제공해 드리기 어렵겠다고 했더니, 대뜸 본인 상부 직원과 통화해 보라며 전화를 돌려서 언짢았던 경험도 있다. 너무 이상적인 의견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자체 문화재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시는 공무원분들은 일정한 문화적 소양을 갖추신 분들로 배치했으면 싶다.


고문헌 이용 업무를 맡으면서 생긴 직업병(?)이 전화벨 소리, 새로 온 메일을 보고 깜짝 깜짝 놀라는 버릇이다. 사실 조금의 여유만 있다면, 고문헌 이용 업무는 개인이용자보다 기관이용자를 상대할 일이 훨씬 많기 때문에, 장서각과 타 기관 간의 교류협력을 증진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는 알짜배기 업무인데 막상 새로운 일이 떨어지면 놀라기부터 하는 나 자신을 보면 씁쓸해 지기도 한다. 금년에는 장서각 고문헌을 매개로 만나는 기관 이용자들을 사무적으로만 대하지 않고, 장서각의 파트너로서 존중하며 필요한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는 사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yjy@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