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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본, 다시 만나다

문은희 사진
문은희
한국학도서관 문헌정보팀 책임사서원

개화기 이후 120여 년 동안 간행된 방대한 근대자료들이 우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최초의 근대문법연구서인 『국문정리』(1897)와 개화기 신소설, 근대장편소설, 잡지, 딱지본 소설 등은 대중들의 관심과 함께 자료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 가운데 딱지본 소설은 당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공감을 넘어 폭발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베스트셀러였다. 그 시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학문적 조명을 받지 못한 딱지본을 다시 만나본다.


딱지본은 필사·목판에 이어 20세기 초반에 새로운 활자로 찍어낸 대중소설이다. 일반적으로 딱지본의 명칭은 그 표지가 아이들 놀이에 쓰이는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딱지본이 거론될 때 빠지지 않는 팔봉 김기진(1903~1985)의 글이다.


재래의 소위‘이야기’책이라는 『옥루몽』, 『춘향전』, 『조웅전』, 『유충렬전』, 『심청전』 같은 것은 연연히 수 만권씩 출간되고 이것들 외에도 『추월색』이니 『강상루』니 『재봉춘』이니 하는 이십 전, 삼십 전 하는 소설책이 십여 판씩 중판을 거듭하여 오되 이것들은 모두 통속소설의 권내에도 참석하지 못하여 왔다. 이것들 울긋불긋한 표지에 사호활자로 인쇄한 백 쪽 내외의 소설은 ‘고담책(古談冊)’,‘이야기책’의 대명사를 받아가지고 문학의 권외에 멀리 쫓기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지에서 길러낸 문예의 사도들의 통속소설보다도 이것들 ‘이야기책’이 훨씬 더 놀라울 만큼 비교할 수도 없게 대중 속에로 전파되어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1)


보다시피 1910년대부터 성행했던 딱지본 소설은 일반 대중들의 삶에 침투하여 즐겨 읽혔지만 저급한 소설쯤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절 울긋불긋한 표지는 상업적이거나 선정적이며, 백 쪽 내외 얇은 장정은 값싼 가격으로, 이십 전, 삼십 전 하는 소설책이 십여 판씩 중판을 거듭했다는 것으로 보아 출판사들은 이익을 적게 보면서 많이 판매하려는 박리다매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딱지본

한국학도서관에 소장된 딱지본


그 시절 딱지본의 인기는 박태원(1909~1986)2) 소설에도 언급된다.

‘아홉 살 때에 집안 어른의 눈을 기어 『춘향전』을 읽었던 것을 뉘우친다. 어머니를 따라 일갓집에 갔다 와서, 구보는 저도 얘기책이 보고 싶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그것을 금했다. 구보는 남몰래 안잠자기에게 문의하였다. 안잠자기는 세책(貰冊) 집에는 어떤 책이든 있다는 것과, 일 전이면 능히 한 권을 세내 올 수 있음을 말하고, 그러나 꾸중 들우. 그리고 다음, 재밌긴 『춘향전』이 제일이지, 그렇게 그는 혼잣말을 하였었다.’

당대의 시대적 흐름이나 대중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독서율이 하락하고 독서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그 시절 딱지본의 인기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면서도 남몰래 읽었던 주인공을 통해서 딱지본이 미친 파급력과 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한편,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적인 낭독가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지만 그와 관련된 기록은 흥미진진하다.

구수훈의 『이순록』의 기록에 의하면,“상놈이 소설 읽는 일을 배워 얼굴을 변장하여 사대부가를 출입하면서 이야기책을 읽었고, 부녀자들에게 접근하여 혹은 진맥을 할 줄 안다고도 하고 혹은 방물장수라고도 하여 안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밤이 이슥하면 함께 동침을 하기도 하여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여성으로 변장하여 상류층 가정을 드나들면서 간음까지 자행하는 사회문제가 야기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3)

아이들과 일반 서민들 뿐 아니라, 상류층까지도 사로잡으며, 신분과 계층을 넘어 영향력을 행사했던 딱지본 소설의 인기와 열기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대중문학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와 대중의 호응도는 싸늘하게 반비례한다. 독자에게 호감을 주는 작품들이 비평가에게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 진실인 셈이다.4) 또한 자료의 가치 평가는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딱지본은 저급하고 상업적 문학작품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역사의 무대에서 그 시절 고단했던 독자들에게 깊게 파고들며 서점 뿐 아니라 장터, 사랑방에서 낭독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웹 툰과 웹 소설의 급격한 성장으로 순수 소설들이 침체되어 간다는 지금의 출판계의 사정을 보며 예나 지금이나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독서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존서고 한 켠에 자리한 딱지본을 다시 들척여 본다. 목침 베고 호롱불 밑에서 울고 웃었을 딱지본 속 이야기는 참담한 그들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 위안이 아니었을까.


1)김기진, 「대중소설론」, 『동아일보』, 1929.4.14. 3면
2)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학과지성사, 2010. p.112.
3)소재영, 민병삼, 김호근 공편, 『한국의 딱지본』, 범우사, 1996. p.19.
4)한국근대문학관, 『소설에 울고 웃다』, 홍시커뮤니케이션, 2017. p. 151.

heyaff@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