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향기

헛소문을 퍼트려 사랑을 얻으려 한다면

김은양
기획처 대외협력팀 전문위원

전라도 강진에 김은애라는 규수가 있었다. 그녀는 깨끗한 성품과 단정한 품행으로 온 고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좋은 평판은 좋은 사람들에게만 전해지지는 않는 법.  안조이라는 노파 또한 그녀의 소문을 듣고 자신의 조카인 최정련과 혼인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자신들의 평판은 좋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노파는 김은애를 깎아내려 자신의 조카와 어쩔 수 없이 혼인하도록 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김은애와 자신의 조카가 사통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그런 소문이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지만, 김은애의 품행에는 변화가 없으니, 가까이에서 그녀를 보고 믿었던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김은애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은 잦아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이 배가 아팠는지 안조이는 더욱 악랄하게 소문을 퍼트렸다.  수그러들 줄 알았던 소문은 더욱 더 고약한 내용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이야기 거리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소문은 소문을 타고 이야기를 더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신만 올바르면 소문 따위 잦아 들것이라 생각하고, 마음고생을 견디며 버티던 김은애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흠흠신서, 정약용, 1822년

흠흠신서, 정약용, 1822년

전통시대 여인들은 이런 경우,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끌려 다니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원수 같은 상대와 혼인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얻어낸 마음이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꾸려진 가정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원수들에게 던져야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결백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거나, 죄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것도 아니었다.  김은애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이유 없이 음해와 모함을 당한 여인들의 이야기처럼 비슷한 사건으로 마무리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김은애는 지금까지 흔히 봐왔던 전통시대 여인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고, 죄를 묻기 위해 안조이를 직접 찾아가 엄하게 꾸짖었다. 그리고는 안조이를 수십 회 칼로 난자하여 처참하게 살해했다.

이 사건에 대해 정조는 "아무리 분해도 그렇지, 사람을 죽인 것은 마땅히 벌 받아야 할 일" 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은애가 살인을 하고도 이리저리 변명을 하지 않고, 자신의 오명을 벗고자 한 것은 감안 할만하다”며, 죄를 면해 주자는 취지로 채제공에게 심판을 의뢰했다. 체제공도 김은애가 충분히 통분할 일이지만, 살인이라는 중죄를 저지른 만큼 용서하자는 논의를 드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조는 판단을 굽히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윤리와 기절이 없는 자는 짐승과 다름이 없는데, 이 사례는 풍속과 교화에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김은애의 행동은 의가 충만하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한 것이기 때문에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며, 모함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해석했다.  여자가 음탕하다는 음해를 당하는 것만큼 큰 아픔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며, 살인이라는 중대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석방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조도 살인을 저지른 김은애를 그냥 풀어주지만은 않았다.  정조는 김은애가 석방되면 그 패기로 봤을 때, 최정련도 분명 살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최정련을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 석방했다. 살인을 저지른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억지로 사랑을 얻으려 했던 전통시대의 흔한 악인의 말로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