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향기

<가심쌍완기봉>이 들려주는 파격적인 이야기!

강문종 사진
강문종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 책임연구원

동성혼의 서사, <가심쌍완기봉>

여성영웅소설・동성혼・지기지우(知己之友)・파격!

고전소설 <방한림전>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단어들이다. 현재 <방ᄒᆞᆫ임젼>・<가심쌍완긔봉>・<落星傳> 등 세 종의 이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 세 종의 이본들은 주요 내용의 차이가 거의 없으며, 등장인물의 이름과 어휘 및 인물의 외형과 행동의 묘사 등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 작품은 여성영웅소설의 특징에 동성혼이 주요 서사로 되어 있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동성애의 관점에서 논의되기도 하였지만, 이 작품에서 동성애의 내용 및 단서를 찾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 작품은 동성혼이 주요 서사를 이루는 여성영웅소설이다. 최근 장시광에 의해 『조선시대 동성혼 이야기: 방한림전』이라는 제목으로 역주 및 현대어역이 출판되면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 이본 중 <가심쌍원기봉>이 바로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표제가 한자어로 <雙婉奇逢>으로 되어 있지만, 내제는 ‘가심쌍완긔봉’으로 되어 있는 34장 분량의 한글필사본 고전소설이며, 19세기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조선시대 전무후무한 동성혼을 주요 서사로 삼은 작품이다. 특히 장서각 소장본 <가심쌍완기봉>은 다른 두 종의 이본에 비하여 방한림(방관)과 영소저(설혜성)의 만남을 더 강조하는 서사로 이루어졌다.

음양의 명확한 구분과 조화를 기본적인 인식체계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동성혼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동성혼이 등장인물들에 의해 매우 주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로 상징되는 임금 역시 이러한 주인공들의 행위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품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음과 같다.

 남자로 살지, 어찌 남편만을 섬기며 살겠는가!

방공부뷔 녀ᄋᆞ의 ᄯᅳᆺ을 스ᄉᆞ로 아라 그 소원 ᄃᆡ로 남의를 착ᄒᆞ여 여공을 ᄀᆞ라치지 안니니 …… ᄆᆞᆺ당이 입신양명ᄒᆞ여 현양부모ᄒᆞ고 놉히 계디ᄅᆞᆯ ᄭᅥᆨ거 뇽각을 븟들고 출댱닙상ᄒᆞ여 남졍북벌의 동졍셔벌ᄒᆞ여 님군을 요순으로 돕ᄉᆞ와 이음 양슌ᄉᆞ시ᄒᆞᄂᆞᆫ 졍승이 되리니 원컨ᄃᆡ 어미ᄂᆞᆫ 다시 님ᄂᆡ치 말고 괴로운 의논을 시작디 말디어다(2a~2b)


위의 예문은 방관1) 부모가 방관을 대하는 태도와 방관이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말하는 부분이다. 시작부터 파격이다. 우선 방관이 어려서부터 남성의 포부를 갖고 있었으며, 부모 역시 딸의 의사를 존중하여 남장을 시키고 남성에 맞는 교육을 시킨다. 방관 역시 가장 완벽한 남성으로의 성장・입신양명・보국충신 등을 목표로 자신의 꿈을 실천해 나간다. 그리고 자신 있고 당당하게 “세속의 여자들처럼 남편을 섬기는 일을 차마 할 수 있겠는가?2)”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확정한다.

나 또한 남자와의 혼인을 원치 않는다!

일ᄉᆡᆼ을 ᄆᆞᄎᆞ미 이 곳 나의 원이라 남ᄌᆞ로 더부려 동실ᄒᆞ여 졀졔ᄅᆞᆯ 바라며 눈썹을 나초아 아당ᄒᆞ믈 괴로이 넉이미 금슬우지와 종고지락을 원치 아니러니 의외예 긔사 이ᄉᆞ니 ᄎᆞᄆᆞ 평ᄉᆡᆼ 원이라(9b)


위의 예문은 영소저3)가 맞이할 남편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황에서 하는 말이다. 영소저 역시 방관이 비록 여성이지만 평생 부부의 연을 맺고 형제의 정으로 사는 것이 자신의 소원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한 남자를 만나 한 방에서 지내며 자신을 낮춰 생활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소저는 남편이 될 방관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속을 매우 기뻐하였다.(10b)”라는 부분에서 영소저의 지향점이 잘 나타난다.

입양, 후사를 잇다!

방관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자신을 제외하면 돌아가신 부모와 유모 그리고 영소저가 전부다. 가끔 수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미소년의 모습 등이 기이하게 여겨지지만, 이러한 특징들이 성정체성을 의심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혼인 후 자식이 없다는 사실은 다소 의심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홀연 급한 벅역 소ᄅᆡ의 ᄒᆞᆫ 별이 ᄯᅥ러디니 말근 비치 죠요ᄒᆞ여 이윽히 어ᄅᆡ엿더니 슈유의 날빗치 죠요ᄒᆞ여 명낭ᄒᆞ거ᄂᆞᆯ 안ᄃᆡ 고처 보니 병이 광ᄎᆡ 업고 옥ᄀᆞᆺᄒᆞᆫ 아ᄒᆡ 노혁거ᄂᆞᆯ…하ᄂᆞᆯ이 날을 쥬시미라(15b)


방관이 형주 안찰사로 파견되었다가 임무를 마치고 경치를 구경하던 중 별과 함께 떨어진 신생아를 얻게 된다. 그리고 아기의 가슴에 ‘낙성’이라고 새겨진 것과 실재로 별이 떨어진 곳에서 얻었다는 사실 등으로 이 아이의 이름을 ‘낙성’이라 짓는다. 그리고는 데려와 자신의 후사로 삼는다. 결국 입양의 형태를 통하여 자식의 문제까지 완벽하게 해결한 것이다.

그녀에게 갑옷을 허하라!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여성영웅소설이다. 여성영웅소설에 매우 중요시 되는 부분이 바로 “남장한 여성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출사한 후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장군(대원수)에 임명되어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즉일의 병부샹셔 방관으로 ᄃᆡ원슈 대장군을 명ᄒᆞ시고 십만 정병과 ᄇᆡᆨ원 대쟝이며 상방금닌과 ᄇᆡᆨ모황월을 쥬샤 대쟝 이하로 선참후계하라 ᄒᆞ시고……(20a)


결국 흉노가 국경을 침범하자 임금은 방관을 대원수로 임명하여 적을 무찌를 것을 명한다. 이에 방관은 갑옷을 걸치고 칼을 찬 영웅의 모습으로 군사들을 지휘하며 전쟁터로 향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흉노에서 역시 가장 용맹스러운 장수는 달녀라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방관은 이 여성을 직접 죽이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여성들이 갑옷을 입고 활을 매고 칼과 창을 들어 전쟁터를 누비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전하, 사실은 여자였습니다.

여성영웅소설에서 남장했던 여성이 자신의 생물학적 성이 밝혀지는 계기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뛰어난 인물이라 임금이 사위로 삼으려고 할 때 부득이하게 고백하고, 둘째, 병이 들었을 때 치료 중에 밝혀져 고백하기도 하며, 셋째,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백하기도 한다. <가심쌍완기봉>인 경우 세 번째에 해당한다.

부복 주왈 신은 본ᄃᆡ 규듕 방젹과 슈션을 가암아난 녀ᄌᆞ라 …… 쥭기예 이르와 황졔폐하ᄭᅦ 마ᄌᆞ 긔망ᄒᆞ오미 굴온곷 실상을 알외오ᄆᆡ……(31b)


방관은 병이 심해져 죽음을 예감한 후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고백하기로 결심하고는 임금에게 자신의 입으로 직접 자신이 여성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영소저와의 만남과 혼인, 낙성을 얻는 과정 등을 간략하게 설명한 후 용서를 구한다. 물론 임금은 놀라면서도 방관의 모든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나아가 그녀를 열협(烈俠)으로 칭찬한다.

벼슬을 거두지 말고, 남자의 예로 장례를 치르라!

여성영웅소설 속에서 남장했던 주인공이 여성임이 밝혀졌을 때 취하는 태도 역시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회귀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비록 여성임이 밝혀졌지만 자신의 주체적 자아를 지키며 결국에는 국가와 가문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양상, 셋 번째는 삶의 끝자락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가심쌍완기봉>은 바로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죽음 후에 국가에서는 그녀를 어떻게 대우를 해 주었을까?


ᄃᆡ승상 영능후 관작과 대장군 병부상셔인을 밧드러 올니오ᄂᆞ니 환슈ᄒᆞ시믈 ᄇᆞ라ᄂᆞ이다 …… 관작은 경의 공덕이 듕ᄒᆞ고 비록 몸이 녀ᄌᆞ나 국가 대신으로 재략지신이라 엇지 벼ᄉᆞᆯ을 거두리오(32b)


방관은 자신이 여성으로 밝혀지자 이제까지 받아왔던 모든 봉작을 반납하였으나. 임금은 이를 환수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시키고 신하들 역시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방관이라는 여성의 사회적・국가적 역할을 공인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방관의 병이 빨리 낫기를 바랐지만, 결국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을 살고자했던 여성영웅은 39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윽고 졸ᄒᆞ니 향년이 삼십구셰요 시셰 졍츙 십년 초하 듕순이라 …… 영부인이 평ᄉᆡᆼ지긔ᄅᆞᆯ 여ᄒᆡ고 크게 셜워 ᄌᆞ로 혼졀ᄒᆞ니 …… 지긔ᄅᆞᆯ 조차 ᄒᆞᆫ날 도라가니 …… 영부인을 합장ᄒᆞ시고 치상은 왕예로 남장으로 장ᄒᆞ시고 문ᄒᆞ의 ᄉᆞ당을 지어 ᄉᆞ시 초졔ᄒᆞ시고……(33a~33b)


방관이 죽자 평생의 지기로 살았던 영소저 역시 같은 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예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국가가 남성의 예로 방관의 장례를 치르라고 명한 것이다. 여성임이 밝혀졌지만 임금과 국가는 방관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회귀시키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관과 영소저의 삶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서사는 허구라는 공간을 통하여 여성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실천했던 사회적・국가적 역할을 만들어냈으며, 남성에게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동성혼을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가심쌍완기봉>은 조선 말기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였던 주체적 여성의식을 반영하여 서사가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그러한 사회적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전소설작품임을 알 수 있다.


1) < 방한림전>에서는 방관주로 표기되지만, <가심쌍환기봉>에서는 ‘방관’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이후 ‘방관’으로 통일한다.

2) <방한림전>에서는 영혜빙으로 표기되지만 <가심쌍완기봉>에서는 ‘설혜성’으로 표기되고 뒤에 일관되게 ‘영소저’ 혹은 ‘영부인’으로 표기된다. 따라서 이후로 ‘영소저’로 통일한다.

3)<방한림전>에서는 영혜빙으로 표기되지만 <가심쌍완기봉>에서는 ‘설혜성’으로 표기되고 뒤에 일관되게 ‘영소저’ 혹은 ‘영부인’으로 표기된다. 따라서 이후로 ‘영소저’로 통일한다.

kmoon@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