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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각한필(綺閣閒筆)』, 여성의 주체적 내면 그 징후를 엿보다! 강문종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1392년 7월 16일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건국된 조선(이 국호는 1393년에 명의 승인에 의하여 채택)은 말할 것도 없이 이전 왕조인 고려의 제도를 계승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본격적인 제도 개혁은 이후 태종, 세종, 성종 대를 거치면서 완성되어 간다. 따라서 조선초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는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는 고문서 1점을 들어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현존하는 조선 최고(最古)의 임명문서는 1393년(태조2) 10월 일에 도응(都膺)을 전의소감(典醫少監)에 임명하는 문서이다.(도판 참조) 조선시대 문학연구 분야에서 주체적 여성의식을 이야기할 때 항상 허난설헌, 김만덕, 김금원 등을 예로 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 명의 여성을 추가해야 할 듯하다. 조선시대 사대부 여성인 기각(綺閣)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한글로 된 한시집 『기각한필』�을 남겼는데 현재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시집은 오빠가 지은 4편의 시를 포함하여 총 249수로 이루어졌으며, 여성의 정절(貞節)이나 혹은 열녀(烈女)의 모습을 노래한 시(詩) 대신 대부분 한시의 학습과 추체험의 세계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린 시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여성의 내면을 심도 있게 표현한 시 역시 3편이 실려 있다. 분량으로 볼 때 상당히 미약하지만, 이 세 편의 시는 주체적 내면을 가진 여성의 면모를 느끼게 해주면서 동시에 변화하는 여성의식의 징후들을 엿볼 수 있다. [사진]『기각한필(綺閣閒筆)』
나는 여성이며 내가 지내는 규방을 넓지 않다.
나의 능력은 뛰어나 결코 좁은 규방 생활에 만족할 수 없다.
나는 내 능력을 갖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라는 시인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 시인은 자신의 상황과 욕망을 작은 어항 속의 물고기에 투사하게 된다. 타자로서 어항 속의 물고기는 바로 시적자아인 기각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강하게 형성된 자아가 주위에 있는 사물, 즉 어항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강하게 투영된 것이다. 이러한 기각의 내면에 자리 잡은 여성의식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직설적이고 강하게 표출된다. 머리털은 성성하나 마음은 소년이고,
푸른 물은 곤곤하여 세월만 흐른다.
평생 절로 남아의 뜻이 있으되,
다만 안방 가운데 여인네 머리쓰개 쓴 것을 탄식하노라. 이 시는 <우음(偶吟)> 기삼(其三) 중 일부 내용이다. 머리는 희어졌으나 그 마음은 여전히 소년 같다는 말에서 아직도 실현하고 싶은 욕망들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시절이 세월 따라 절절히 흘러 이제 늙었음을 인식하게 되자, 여성으로 태어나 규방에서 자신의 모든 삶을 보낸 것이 안타까워졌다. 평생 큰 뜻을 품은 것은 당대의 남성들 못지않았지만, 시적자아의 생활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억압들은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기각은 이러한 억압적 현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자신과 그 상황에 대한 자기반성적 성찰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세계와의 충돌에서 이러한 주체적 내면성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말년에 지은 <자탄(自歎)>이라는 시에 강하게 나타난다. [사진]<자탄(自歎)> <자탄 갑인 년 봄에 쓴 시>
하늘이 내 재주를 내심에 반드시 쓸 데 있건마는
예로부터 현철한 이는 다 마음을 수고로이 하였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한인데, 또 이룬 것이 없으니
희끗희끗한 머리털 누가 막으리오?! 손으로 가슴을 만지며 앉아 길게 탄식하니
쇠잔한 등잔불 깜빡거려 밤은 이미 깊었다.
홀연 들으니, 자규가 텅 빈 산 속에서 울며
목청을 굴리고 혀를 놀려 슬픈 소리 뱉어낸다. 밤마다 쉬지 않고 울어
시름겨운 이에게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
바다 위로 떠오른 밝은 달이
새벽에 구름 사이에 잠길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요?! 하루아침에 병들어 누우매 서로 알 리 없으니
도도한 세상 정이 예나 지금이나 같구나.
마음은 뜬구름 같아 정한 곳 없으니
이로부터 고향 찾기가 더디고 더디구나! 1854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위 시에서 시적자아는 타고난 재능과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한탄하고 있다.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은 예전부터 항상 마음이 괴로웠다는 표현으로 자기 자신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기 합리화 혹은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형성된 주체적 내면의식을 자신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가슴을 치며 탄식하기도 하고, 밤에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면서 슬픈 노래도 불러보고, 밤마다 울어도 보지만 이미 늙어버린 몸을 어쩔 수 없었다. 주체적 내면을 가진 개성은 결국 기존 질서로의 편입이 아닌 자기 확장의 길로 들어섰을 때 생긴다. 의식에서든지 혹은 행위에서든지 자신의 지향점을 사회적 질서나 기존의 관념으로 향하지 않고 내면으로 향했을 때, 자신의 내면성에 개인의 주체성으로 확립되고 진정한 내면세계의 개인화가 이루어진다. 기각은 주체적 내면을 가진 개성이 형성되었으나, 이를 외부로 확장시키는 강하면서도 도발적인 실천을 하지 못한 채 시를 통해 자신의 주체적 내면을 표출하고 있다. 시적자아는 고정된 사회질서와 관념에서 완전한 주체적 내면의 개인화를 이루어지는 못했지만, 19세기 중반을 살다간 한 여성을 통하여 여성들에게는 억압된 유교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가는 여성의 주체적 내면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효장세자의 그림은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 그림과 비교해도 예사롭지 않다. 지우거나 고칠 수 없는 필묵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감각적인 필치가 돋보인다. 부왕인 영조도 어린 시절 누구보다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영조대왕행장』의 한 구절을 보자. “무릇 글씨와 그림은 다 배우지 않고도 잘 하시어 필묵을 가지고 노실 때마다 빼어난 풍채가 사람들의 눈을 감동시켰다.” 효장세자도 영조의 이러한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하다. 효장의 이복동생인 사도세자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지녔다. 두 점의 낙서에는 닮고 싶고, 뛰어 놀고 싶은 어린 세자의 무의식 세계가 담겼다. 또한 책을 가까이 하려는 세자의 또 다른 모습도 투영된 듯하다. 10살짜리 아들을 떠나보낸 영조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듯 상심이 컸다. 훗날 세자의 유품으로 돌아온 이 책을 쓰다듬던 영조는 이 낙서를 마주하며 못 다한 부정(父情)을 달래야 했을 것이다. 영조는 『일한재소재책치부』에 남긴 효장세자의 낙서 두 점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소중한 애장품으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영조가 이 목록집에 기록한 실물들은 대부분 흩어져 그 행방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온전히 남은 것은 효장세자의 이 낙서 그림 두 점뿐이다. <어항 속 물고기>
작은 동이에 물을 담으니 비록 깊지 않으나
물고기 때때로 떴다 잠겼다 마음껏 하네.
그것을 보니 결코 동이 속에 있을 물건이 아니니
활발하여 스스로 강호로 나가고픈 마음이 있네.
이 시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수영실력이 매우 뛰어나 작은 물동이 안에 갇혀 지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이 물고기를 시적자아에 비유하여 읽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