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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소식지 08월호 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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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인의 피부손질, 한류의 원동력이 되다 [사진] 이민주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 최근 우리나라 화장품은 면세점에서 구매수량을 제한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또 수입화장품의 경우도 ‘한국서 통해야 세계서 통한다.’고 할 정도이니 한국화장품의 위상도 위상이려니와 화장품을 고르는 안목 또한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안목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가장 가까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조선시대 여인들에 있어 미의 기준은 흰 피부와 검고 풍성한 머리였다. 그 중에서도 흰 피부는 백옥 같은 피부를 최고로 쳤다. 잡티 하나 없는 맑고 투명하면서 매끈한 피부를 갖기 위해서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다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피부미인이 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미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청결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촉촉한 피부를 위한 보습이다. 촉촉한 피부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는 박이 가장 좋다. 먼저 박 줄기를 잘라 병에 꽂으면 끈적거리는 즙이 나온다. 이것을 얼굴에 바르면 로션을 바른 것과 같이 촉촉하고 부드러워진다. 수세미, 오이, 유자 등도 같은 효과를 내는데, 여기에 박하 잎을 짜 넣으면 향기롭고 매끄러운 수분크림이 탄생한다. 깨끗한 피부를 위한 첫 단계는 뭐니 뭐니 해도 청결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안이 중요한데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조두(澡豆)다. 조두는 녹두, 팥, 콩 등을 맷돌에 갈아서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곱게 갈아 체에 쳐서 만든 가루비누다. 이것을 젖은 얼굴에 문지르면 때가 빠지고 살결이 부드러워질 뿐 아니라 미백효과까지 탁월하다고 「탁지정례」는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녹두가루는 원기를 보호하고 열독을 없애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였으니, 깨끗한 피부를 위한 좋은 재료였음에 틀림없다. 다음은 백옥같은 피부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다. 촉촉한 피부에 면약(面藥)이라고 하는 영양크림을 발라야 캄캄한 밤 환한 둥근달과 같은 하얗고 윤기 있는 피부가 된다. 󰡔규합총서󰡕에는 “겨울에 얼굴이 트고 거칠어지면 계란 세 개를 술에 담가 김이 새지 않도록 밀봉을 한  후 약 한 달간 두었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을 뿐 아니라 윤기가 나는 것이 옥 같아진다.”고 했다. 결국 피부의 완성은 광채가 나는 윤기 있는 피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피부손질은 내밀한 규방의 이야기이다. 무슨 용품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왕실의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임신 오월 큰마리 ᄇᆞᆯ긔’ 와 같은 왕실고문서가 950여 점 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백옥 같은 피부, 크고 풍성한 머리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욕망이야말로 아름다워지고자 했던 조선시대 모든 여성의 로망이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부터 오늘날 세계의 아름다움을 이끄는 한류의 원동력이 시작되었으리라! [사진] 음양소와 빗솔그런데 조두로 만든 세정제는 날 비린내가 나는 단점이 있었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향을 넣자 오히려 향기 나는 비누가 되어 주로 왕실여성에게 진상되는 최고급 비누가 되었다. 왕실여성들이 비싼 조두를 쓸 때 일반여성들은 무엇을 썼을까? 이들은 주로 쌀이나 밀의 껍질인 쌀겨나 밀기울을 베나 명주 주머니에 싸서 얼굴에 문질렀다. 또 생활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쌀뜨물로 얼굴을 씻었다. 이 역시 천연세제로 깨끗한 피부를 만드는 데 손색이 없었다. [사진] <자료 2> 부분 확대  이제 임청각의 사람들은 500년을 지켜온 임청각과 임야 1만 2천여 평을 국가에 헌납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임청각이 단지 일개 가문의 종택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자 독립운동의 역사 현장으로서 대한민국의 산 교육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석주선생의 자손이 일제의 호적을 거부함에 따라 4인의 친족에게 명의 신탁되어 70년간 방치됨으로써 불분명해진 소유권이 발목을 잡고 있다. 비슷한 시기, 다른 한 편에서는 송병준과 이완용 등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토지환수소송을 제기하였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불의에 영합하고, 개인과 가문의 보존을 위하여 권력에 복무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지배층이 되고, 부와 권력을 누린 이들의 토지였다. 이제는 탐욕과 방종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속에서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석주선생과 임청각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명가로서의 가치 때문은 아닐까? [사진] <자료 1> 임신 오월 큰마리 ᄇᆞᆯ긔 <자료 1> 얼굴에 윤기를 주기 위해 바르는 벌꿀이 황밀이고, 머리에 윤기를 주기 위해 바르는 진유가 참기름이다. 또 머리를 손질할 때 사용하는 빗, 빗치개, 빗솔 등은 물론 이것을 넣어 두는 소접까지 기록한 자료가 있어 조선시대 여인들이 사용한 미용용품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